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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시작

아스날 9번의 저주

by 디트로이 201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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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넬카 수케르 제퍼스 레예스 밥티스타 에두아르두 레만 (위로부터)

 

징크스나 저주 같은 추상적인 단어에 크게 마음쓰는 편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의 아스날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교묘한 우연이 눈에 거슬린다. 다름아닌, 아스날 9번 선수 이야기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아스널과 9번 유니폼의 악연을 편의상 '아스널 9번의 저주'로 명명한다.

1. 아스널과 9번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스널의 9번은 현재 첼시에서 뛰고 있는 니콜라스 아넬카였다. 갓 스무 살이었던 아넬카는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앙리 이전에 전심전력을 다해 키우던 골게터였다. 열 여덟 살이던 1997년에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그는 이후 2년 동안 리그에서만 20골을 넘게 터뜨리는 등 무서운 성장세로 팀의 주축 공격수가 되었다. 아스날 팬들의 아넬카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넬카의 리그 데뷔골은 다름아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터졌고 이날 아스날은 3-2 승리를 거뒀다. 이안 라이트 이후의 스트라이커를 고대하던 아스날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한 아넬카는 1998/99 시즌 17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 최고 공격수 반열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아넬카가 '더 나은 급여'를 원하면서 아스날과 아넬카의 관계는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벵거 감독은 그를 잡고 싶어했지만, 아넬카와 그의 에이전트가 요구하는 액수는 너무 높았고 결국 아스날은 1999년 여름 '잘 길러낸' 스타를 레알 마드리드로 넘겨야 했다. 50만 파운드에 파리 생제르망에서 데려온 선수를 2년 반만에 2,300만 파운드를 받고 팔았으니 돈으로만 치면 40배가 훨씬 넘는 '남는' 장사였지만 애정을 주었던 선수가 '돈'을 이유로 방출을 자청한 일은 아스날 팬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아스날을 떠난 아넬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999/2000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지만, 팀 훈련 거부로 팀으로부터 45일 출전정치 징계를 받고 동료들의 '왕따'에 시달리는 등 쉽지 않은 시절을 보낸 뒤 파리 생제르망,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페네르바체, 볼튼 원더러스 등을 거쳐 현재 첼시에서 뛰고 있다. 그가 이적하는 동안 발생한 이적료를 모두 합산하면 9,000만 파운드에 이르는데 아마도 한 선수의 이적료 합산액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일 것이다.)


2. 상심한 아스날의 다음 타겟은 크로아티아의 득점기계 다보르 수케르였다. 1998년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조국 크로아티아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그는 당대 최고의 골게터로 각광을 받던 스타였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에서 아스날로 유니폼을 갈아입자마자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다. 31살의 나이도 수케르에 대한 기대감을 줄어들게 하진 못했다. 스페인 리그에서 8년을 뛰며 120골을 몰아넣었던 수케르의 데뷔는 기대를 어긋나게 하지 않았다. 첫 경기부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그는 1999/2000 시즌 첫 선발 출전 경기인 아스톤 빌라 전(3-1 승)에서 2골을 몰아치며 아스날 팬들의 환호를 독차지했다. 하지만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급격하게 하락세를 걷던 수케르는, 프리미어리그 22경기에 출전 8골을 기록했지만 기복 심한 플레이로 실망감을 안겼고 1999/2000 시즌 UEFA컵 결승전 갈라타사라이와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지만 뼈아픈 실축으로 팀 우승 실패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이후 시즌이 끝나고 바로 웨스트햄으로 이적한 그는 독일 1860뮌헨에서 2년을 더 뛴 뒤 선수 생활을 접었다. 웨스트햄과 1860뮌헨에서 보낸 3년간 그는 고작 7골을 넣는 데 그쳤고, 아스날 시절은 그 전성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시절로 기억된다.

3 '아스날 9번'의 다음 주자는 에버튼 출신의 스트라이커 프란시스 제퍼스. 17살이던 1998년 에버튼 1군 경기에 데뷔하며 '차세대 잉글랜드 대표 골게터'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무려 9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아스날로 팀을 옮겼다. 웨인 루니 이전에 '에버튼 최고의 유망주'로 불렸던 그는 당시만해도 '페널티 박스 안의 여우'라는 별명처럼 민첩하고 영리한 플레이로 각광받았던 공격수였지만 아스날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시절을 보냈다. 2001/2002, 2002/2003 두 시즌을 아스날에서 뛰었지만 리그에서 고작 4골을 넣는 데 그쳤고, 쉬운 찬스를 여러 차례 놓치며 팬들의 실망감을 자아냈다. 이후, 친정팀 에버튼으로 임대되었지만 여기서도 1년 내내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등 부진했고 결국 2004년 여름 26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찰튼 애슬레틱으로 방출됐다. '진정한 9번'을 기다리던 아스날 팬들의 희망이 다시 한번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제퍼스는 이후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했지만 여기서도 골을 넣지 못했고 이후 2부리그로 떨어진 뒤 입스위치 타운을 거쳐 셰필드 웬즈데이에 소속되어 있다.)

 

 

[사진] 아스날 9번의 희생양

 

'9번'과 유독 인연이 없던 아스날. 지난 주말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한 에두아르두 다 실바의 등에 박힌 숫자는 9번이었다. 단순한 우연이라며 넘기기엔, 그동안 아스날 9번 선수들이 걸어온 순탄치 못한 역사가 눈에 밟힌다.


4. 제퍼스에게 실망한 아스날 팬들은 또다른 9번을 맞이했다.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공격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부 국내 팬들을 그의 '친숙한' 외모가 반가웠는지 '스페인의 나훈아'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벵거 감독은 제퍼스가 에버튼으로 임대되어 있던 2004년 1월, 무려 1,500만 파운드의 거액에 레예스를 영입했고, 그에게 등번호 9번을 안겨줬다. 레예스와 아스날의 출발은 달콤했다. 데뷔 두번째 경기인 미들즈브러와의 칼링컵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또 한번의 9번 재앙'을 우려하게 했던 레예스지만, 그 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FA컵 4라운드에서 만난 첼시 전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더니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다시 만난 첼시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터뜨려 아스날 팬들의 마음을 잡았다. 이어진 2004/2005 시즌도 장밋빛으로 시작했다. 레예스는 시즌 첫 6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화려한 기록으로 팬들을 만족시키며 박수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가을이 오고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레예스의 질주는 주춤거렸다. 기복이 심해졌고, 의기소침한 모습도 종종 보였다. 급기야 2005년이 되자 이적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에 이르렀는데 당시 한 스페인 언론에서는 "레예스가 동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팀을 떠나고 싶어했다"는 보도를 냈고, 영국 언론들도 "레예스가 향수병을 앓고 있다"는 보도를 내며 레예스 이적설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아스날은 레예스와 6년 연장 계약을 체결, 이적 루머를 잠재웠지만 레예스는 결국 2005/2006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레알 마드리드로 임대되어 떠나면서 아스날 팬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말았다. 레알에서 1년간 활약한 그는 올 시즌이 시작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완전 이적, 런던을 완전히 떠나게 됐다. 아스날에 머무는 2년 반 동안 110경기에 출전, 20골을 넘게 터뜨린 레예스는 기록 상으로 보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활약을 했지만, 이적료에 대한 높은 기대, 또 소속 기간 동안 향수병과 동료들과의 불화설로 뒷말이 무성했던 탓에 성공작으로 평가받지 못한 채 쓸쓸히 잉글랜드를 떠나고 말았다.


5. 레예스가 남기고 간 '9번'은, 레예스 이적 조건에 따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1년 임대 계약에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줄리오 밥티스타에게 넘겨졌다. 아스날 입단 당시 '남미의 스티븐 제라드'로 소개됐던 밥티스타는 '짐승'이라는 또다른 별명처럼 터프하고 공격적인 플레이어로 유명했다. 스페인 리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부터 스트라이커까지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는 스페인에서 뛴 3시즌 동안 46골을 뽑아낸 기록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아스날 팬들의 기대는 컸지만,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밥티스타의 텁텁한 표정까지 환영하진 않았다. 게다가 밥티스타는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보였다. 미드필드와 공격수 어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해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1년간 리그에서 3골 7도움, 컵대회에서 6골 1도움의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결승전에는 부상으로 빠졌고 팀도 준우승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아스날 팬들의 가슴을 적시는 데 실패한 그는 시즌 종료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했다.


6. 이렇게 주인을 찾지 못하고 런던을 부유하던 아스날의 '9번'은 올 시즌 들어 이제서야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난 듯 했다. 예로부터 '9번'은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의 번호. 지난 여름 크로아티아에서 영입된 에두아르두 다 실바는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경기당 1골 이상을 넣는 엄청난 성적과 대표팀에서의 활약(A매치 22경기 13골)을 바탕으로 900만 파운드의 높은 이적료에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선수다. 시즌 초, 득점력이 살아나지 않아 '9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싶었던 에두아르두는 시간이 흐르면서 팀 동료 아데바요르와의 콤비 플레이가 살아나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포지션 경쟁자 로빈 반 페르시가 부상으로 주춤하는 사이, 에버튼 전에서 2골을 넣으며 부활의 전조를 울렸고 얼마 전에 열린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는 멋진 골과 도움으로 팀 승리를 이끌어 오랫 동안 활약을 기다리던 아스날 팬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난 23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 나선 에두아르두는 경기 시작 직후 상대 수비수 마틴 타일러의 태클에 쓰러지는 비운을 맛봤다. 정강이뼈가 두동강나는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는 올 시즌 내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심한 경우 더 긴 시간을 병상에 지내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한 영국인 뼈 수술 전문가는 자칫하면 발목을 절단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을 만큼 큰 부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아스날 팬들은 그가 어서 완쾌되어 그라운드로 돌아와 부상 전까지의 상승세를 잇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살아난 그가 골을 터뜨리는 날,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낼 것이다. 물론, 그 날로부터 에두아르두는 '아스날 9번의 저주'를 풀어낸 선수로도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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